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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마 당 *


 안나 ( 2020-01-14 07:55:45 , Hit : 623
 간호사의 사과(沙果)/ 조삼훈 님 카톡 글입니다

암(癌) 병동에서 야간 근무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 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호출기로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습니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입원 환자였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황급히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 한 개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습니다.

그의 옆에선 그를 간병하는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 줘요." 나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얼른 사과를 대충 깎았습니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습니다. 그러자 예쁘게 좀 깎아 달라고 합니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환자가 참 못마땅했지만,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습니다. 사과의 모양새를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워하는 그를 두고 나는 서둘러 병실을 나왔습니다.

얼마 후,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간호사님, 사실 그 날 새벽에 사과 깎아 주셨을 때 저도 깨어 있었습니다. 그날이 저희들 결혼기념일 이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담은 접시를 주더군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져서 깎아 줄 수가 없자 간호사님에게 부탁했던 거랍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남편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그날 사과 깎아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나는 그 새벽, 그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옹색한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는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며 말했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노라고....,



은경 (2020-01-14 13:09:42)  
바로 나의 자화상입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래 줍니다. 즐거운 나날 지내세요!
안젤라 (2020-02-24 14:38:43)  
눈 가가 촉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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