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마 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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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벗님들, 너무나 보고 싶어서 이 글을 쓰네.
지금으로부터 오십사 년 전인 1954년 봄, 이백사십여 코흘리개들이 각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호기심과 기대로 설레이면서 꿈의 요람, 별량초등학교 교정에 한데 모였네.
'앞으로 나란히!' 구령에 맞춰 손도 뻗어 보고, 자기 이름을 부르면 '네!' 하며 큰 소리로 대답도 해 보고, 선생님이 '하나, 둘' 하시면 엄마 닭을 쫓는 병아리들처럼 다 함께 '셋, 넷' 하면서 줄지어 선생님을 따르며 서로의 얼굴을 익혀 갔었네.
헐벗고 주리던 전 후 시절이라 동네마다 한 둘씩은 그나마 학교에도 못 갔으며, 우리는 한결같이 검정 물감을 들인 무명 저고리에 바지며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빤쓰는 잘 안 입었었네. 여학생들은 그걸 늘 입고 다녔었다고 우겨 대더군. 하기사 뭐...
운동화는 중학생들이나 신는 고급 신발이었고 우리는 왕자표며 범표, 말표같은 검정 고무신을 양말도 없이들 신고 다녔네.
우리는 모두 두 겹으로 접은 '항카치'라는 콧수건들을 왼쪽 가슴패기에다 달고 다녔지만 그걸 쓰는 일은 별로 없었지 않았던가.
누런 콧물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걸 그대로 후루룩 들이마셔 버리거나 소매로 쓰윽 문질러 버리고 말았거든.
반은 1반에서 4반까지 네 개 반이었지만 교실이며 책, 걸상이 부족하다 보니 합반을 하기가 일쑤였으며 1학년 내내 마루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었지.
어떤 때는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교대로 교실을 쓰기도 하였고, 토요일 같은 날은 땅바닥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었어.
연필은 잘도 부러졌는데, 심이 손가락 마디만큼 짧아지면 대롱에 끼워서 침발라서 썼고, 네모칸 쳐진 공책은 누런 재생지였었네. 칼이 없어서 연필을 이빨로 물어 뜯어서 심을 내어 쓰기도 했으며 크레용은 닳아서 없어진 색이 있어도 새로 사지를 못했네.
지우개는 갑오징어 뼈로 대신하였고, 그나마 그도 없으면 검지에 침을 발라서 종이가 찢어지기 전까지 문질러서 지웠으며, 녹슨 대못을 주워서 철길 선로에 놔뒀다가 기차 바퀴들이 지나가며 눌러서 납작해지면 숫돌에 문질러 날을 내어 칼을 만들어 썼어.
보리피리, 버들피리, 연, 팽이, 활, 총, 새총, 바람개비는 물론 팔랑개비도, 낚싯대, 찌랑 추며 스케이트도 다 우리 손수 만들었고, 좀 더 커서는 철봉이나 역기도 만들어 썼으니 자급자족이 몸에 뱄던 걸세.
무럭무럭 자라던 우리는 식욕이 왕성하여 팽, 파리똥 같던 '뻘뚝', 목화 생열매인 '다래', 잎사귀보다 먼저 피던 참꽃, 소나무 속껍질인 '송쿠', 찔레순 '찔구', 밭두렁 띠의 하얀 속줄기인 '빼뿌쟁이', 이른 봄에 피던 동백꽃 꿀, 매운 맛이 나던 '매홧잎', '밍감', '굉감'(고염), 도라지, 더덕 맛이 나던 '딱주', 메뚜기, 참새, 개구리, 들쥐..., 등 주변 산하 온갖 것들이 다 우리네 주전부릿감이었네.
4학년 올라갈 때인가, 반 하나를 줄여서 1반은 남자, 2반은 남자 4분의 3에 여자 4분의 1 혼합반이었고 3반은 다 여자였는데,누군가가 '근디 가이내더런 참 이뺐어, 잉' 그런 소리를 허대나. 헌데 그것이 내숭가, 병철잉가 그걸 다 잘 모르더라고...
봄소풍에 가을소풍, 여름방학에 가을 운동회, 긴 겨울방학, 그리고 짧지만 또 봄방학도 있어서 그때는 무쟈게 좋아들 했었네. 도시락은 꽁보리밥에 김치 반찬 일색이었으며, 시금털털한 김칫국물이 어깨며 허리에 두른 책보를 적시곤 했었잖던가?
짚으로 만든 공차기며 게또바시(발차기 패싸움), 고상(항복)받기, 줄넘기, 빠짱(딱지)치기, 개잭기(개잡기), 다마(구슬)치기, 삠뽕(손야구인 셈), 기마전, 사방놀이, 독(돌)받기(공기놀이), 팽이치기, 질경이나 담쟁이로 만든 제기차기, 땅뺏기, 닭싸움, 도둑놈잡기.....그땐 즐겨하던 놀이가 참 많기도 했는데, 놀이에서 편을 가를 적엔 으레 '장께이포시(가위 바위 보)로 니편 내편을 나눴었지.
'퇴비증산운동'이라며 풀을 베어 묶어 매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고, '쥐 퇴치운동' 일환으로 쥐꼬리를 잘라다가 제출하기도 했었고, 어느 늦가을엔가는 수렵을 한다고 봉덕 심포수랑 전교생이 산 계곡과 등성이를 누비며 토끼몰이를 하기도 하였으며, 교사를 짓는데 쓰자며 첨산 중턱까지 올라가 자기 머리통보다 더 큰 돌을 주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날라 오기도 하였네.
우리가 그렇게 몸으로 부대끼며 꿈많던 소년, 소녀 시절 육 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애틋한 정도 들고 허물없이 다 친해지더라고.
어쨌건 우리는 버들 방전 저만치 먼 발치에서 고추며 잠지 다 내놓고 볼 것 못볼 것 다 보며 냇물 멱을 감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런 우리가 세상으로 나와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난 지도 어언 삼십 년일세. 그러니까 우리는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바뀔 성상을 서로 벗하고 의지하며들 지내 온 셈이네.
정겨운 벗님들, 그간 앞만 보며 정신없이들 살다 보니 엊그제 청군백군 겨루며 맨발로 달리던 코흘리개 소년, 소녀들이 벌써 초로 예순들이 넘어 있고, 머리마다 허옇게 내린 서리가 처진 어깨며 가슴을 이리도 시리게 하는구만....
우리는 그렇네..., 서로 안 보면 보고 싶고, 때 되면 그리워지고, 못 만나면 애가 타는, 자기 분신처럼 가까운 죽마고우들일세.
우리 벗님들, 평생을 지켜 온 이 순수 동심 우정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며, 보배로운 가치인지 모르네.
여기서 우리 함석헌 선생의 노래를 한번 들어 보세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졋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사람,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떠나려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 감을 사람,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 시대의 등불이셨던 선생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진정한 벗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저미도록 절절이 잘 드러내 주셨네. 나는 감히 단언커니와 우리 벗님들이야말로 서로가, 선생이 그리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러기에 마냥 행복해진다네.
너무 무거워졌다면 이번에는 우리 좀 가벼운 얘기나 한번 해 보세. 우리 벗님들, 이런 말은 더러 들어들 봤을 걸세.
'예순이 넘으면 더 한 놈이나 덜 한 놈이나 다 똑 같고,
일흔이 넘으면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 똑 같고,
여든이 넘으면 성한 놈이나 아픈 놈이나 다 똑 같고,
아흔이 넘으면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 다 똑 같다.' 는 말 말여.
이제 우리 너무 안달복달하면서 갈팡질팡 살지들 말고, 좀 든든하게 믿으면서들 사세나. 아니,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안 믿는 벗님네, 그건 또 무슨 동배짱이여 그래? 배~째~? 아니네. 그건 아주 큰일 날 소리라네. 모든 이에게 항상 열려 있고 또 동네마다 다 있으니 꼭 찾아 나가시게나들!!
늘 기쁜 마음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싱겁게 야채, 과일 위주로 소식하며 땀흘려 일하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좀 하고 짝꿍이랑 자식, 손자 재롱이나 보면서 즐겁게 지내시다가 우리 집행부가 연락들 하거들랑 그때그때 모임에 착실하게 잘들 나가면 되는 거 아녀?
참 하마터면 중요한 걸 빠뜨릴 뻔했네. 여기 우리 사랑방으로 들어와서 먼저 회원으로 가입부터 해 놓고, 잘 나온 사진도 한 장씩 올리고, 글이나 그림, 사진이나 음악도 좀 올려 주시고, 다른 벗님들도 다 그리 하시도록 많이 많이 홍보해 주시게나들.
그리고 행여 눈이 침침하여 컴퓨터가 잘 안 되면 자녀들을 시켜서라도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네. 우리 솜씨가 설령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우리 친구 중 어느 누구도 그걸 우스개삼거나 까탈부릴 사람이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제발 일수 찍듯 매일 매일 찾아와 주시게나.
더 많은 추억거리며 정감 넘치는 얘기는 생각이 날 때마다 들러서 우리 사랑하는 벗님들이 그때 그때 이어 주시기를 청하며 이만 우리 '삼오회 카페' 마중글로 갈음하려네.
보고 싶은 우리 벗님들, 다 다 넘 넘 고마우이. 봄빛 축복이 벗님과 벗님 가정과 함께하시는 삶터마다에 가득, 가득하시길 비네.
2008년4월 25일
용후니
(옆 사람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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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자리한 아스라한 동심 세계가 꿈틀댑니다.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절이 기지개를 켭니다. 영혼은 어느새 꿈나라를 여행합니다. 은빛 가루 미리내 타고 별나라를 납니다. 재잘재잘 동무들이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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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투박진 시절 까까머리랑 단발머리들이 뽀얗게 다가옵니다. 신작로 늘어선 버드나무 그림자 길게 드리울 때 저벅저벅 모듬지어 귀가하던 옛 동무들, 지금은 다 어떻히 살고 있을까요? 풋풋하던 그 정이 그립습니다. 가뭇이 그을은 낯익은 그 모습들이 마냥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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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먹이던 뒷 산 바위에 팔베개하고 누워 본 하늘, 어찌도 높푸르던지... 파릇한 우리 꿈도 그리 높고 푸르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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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동심초'를 흥얼거려 봅니다. 동심은 추억 속 동화나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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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옛 동산에 올라'처럼 산천은 변할지라도 죽마고우 간 애틋한 정은 더 깊어만 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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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同心草)'는 노랫말이 전하듯 맺지 못한 사랑을 담은 애절한 가곡이지요. 그리고 '옛 동산에 올라' 역시 세월무상의 허무를 절감케 하는 애창 가곡이기도 하구요. 옛것은 이렇듯 아름답지만 슬픔도 주고, 고통스럽지만 기쁨도 맛보게 하는 우리네 삶의 흔적들이지요. 첫사랑은 어긋나서 아름답고, 발자욱은 지워지고 추억만 남지요. 여러 생각 참 많이 들게 하네요. 죤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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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공통분모는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이지요. 보석처럼 소중한 추억은 닦을수록 빛이 납니다. 바쁘고 지칠 때마다 빛나는 추억 활력소로 힘찬 나날 보내십시다. 고맙습니다. 알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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