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마 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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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머리핀 노점상을 하고 있는 그에겐 잔인한 날이다.
서툰 손놀림으로나마 보기 좋게 머리핀을 진열했는데, 또다시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소중한 밑천이 젖을까 허둥지둥 다시 물건을 덮는 그 사람,
손수 싸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대광교 전 교목실장이었던 류상태 목사(49)가 학교를 떠난 지도 반년이 흘렀다.
예배 수업을 거부하며 학내 종교 자유를 위해 단식농성 했던 대광고 강의석군은
법대생이 되었고, 강군을 옹호하다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내야 했던 류목사는
목사직을 반납하고 노점상이 되었다.
현실은 소신껏 살려는 자에게 언제나 '생계'란 무기를 들이대며 가혹해지게 마련이다.
대학교 2학년인 아들, 고3 인 딸, 목사 부인은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자 '파출부'일을
나가야 했다.
교회 권사인 늙은 노모는, 그의 자랑이던 목사 아들때문에 몸져 누었다.
곶감 빼먹듯 나날이 줄어드는 퇴직금, 얼마 안 남은 퇴직금으로 점포라도 열까 싶었지만
망해 버릴 경우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학교와 교회만 오가느라 세상물정을 모르니 할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노점상이었다.
"처음엔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님 흉내를 내보자는 낭만적인 생각도 있었어요,
지금요(? )처절하게 배울 뿐입니다."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지난 20일 동안 노점상에서 판 건 겨우 10만원어치, 물건 원가에 차비,
점심값 빼고 나면 번 것도 아니다.
하도 안 팔리기에 큰맘 먹고 목 좋은 지하철역 앞으로 갔다가 험한 소리 들으며 쫓겨났다.
그래서 물건 가격을 내렸다.
그랬더니 이번엔 예전에 사갔던 초등학생 꼬마들이 와서 따진다.
1000원에 사간 머리끈을 며칠후 500원에 팔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악착도 못떤다.
미안한 마음에 500원짜리 머리끈을 그냥 공짜로 준다.
"제 버릇 어디 가나요? 훈장티를 못 벗어, 귀고리 구경하는 초등학생들한테
'어린 나이에 귀 뚫으면 안된다.'고 훈계나 하고 말이죠.허허."
험난한 생활고는 학교를 그만둘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지금도 일말의 후회도 없이 단호했다.
"그놈의 생계 때문에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아무 말 못했었죠,
그는 강의석군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2년전부터 '불거토피아'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해오고 있다. 불거토피아란 불로소득을 거부하자는 뜻,
"3년전인가, 강남 아파트 값이 엄청나게 뛰었어요, 전세 사는 사람들이 자살하고 그랬죠,
그런데도 그 부자 동네 교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성도들에게 '아파트 투기 하지 맙시다'라고 한마디만 해줘도 분명 무엇인가 달라질텐데."
그래서 그는 자신부터 실천해보자는 의미로 '마티스 10년 타기'
'큰 평수로 이사가지 않기' 등 자신과의 약속을 카페에 공개하기도 했다.
노점상을 하고 있는 지금은 서약을 어기고 싶어도 어길 수 없는 형편이지만-
어느덧 비가 그쳤다.
아직도 꾸물꾸물한 하늘, 그러나 잠시라도 물건을 하나라도 팔기 위해 그는 다시 좌판을
펼쳤다. "1년전만 해도 노점상을 할 줄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도 학교 안에서 보다
이 모진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낌니다."
힘든 나날 속에서도, 사람 좋아 보이는 따뜻한 웃음 짓는 법만은 잃지 않았다.
경향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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